두란노에서 출간한 김다위 목사님의 영혼을 위한 싸움이란 도서인데요.

부제가 예수님과 동행을 가로막는 일곱 가지 죄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 일곱 가지의 죄가 영혼을 위한 싸움임을 말해주는데요.

책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의 죄는 바로 교만, 허영, 시기, 나태, 분노, 탐욕, 정욕입니다.

영혼을 위한 싸움

책의 저자는 김다위 목사님인데요.

선한목자교회 후임 목사로 2023년 4월부터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로 섬기는 분이라고 하는데요.

책의 서문에 한국교회에 대한 설문이 있더라고요.

2023년 초에 기윤실에서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했다고 해요.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고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은 21%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종교인의 경우 11%만 한국교회를 신뢰한다고 합니다.

이런 수치는 한국교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네요.

우리 사회가 참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전에는 정치가 종교 눈치를 봤는데요.

지금은 종교가 정치인의 눈치를 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치가 극단으로 흐르면서 종교도 그 극단의 소용돌이에 매몰되지 않았나 생각하게 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분노라는 파트에 관심이 생겨서 읽게 되었는데요.

 

참 제가 좋아하는 목사님이 추천사를 써주셨네요.

수도사 에바그리우스는 증오, 화, 격노가 기도 생활에 가장 나쁜 적들임을 간파했습니다.

분노로 인한 충동은 우리의 정신을 눈멀게 합니다.

히포의 어거스틴은 죄를 '무질서한 사랑, 망가진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타락하여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자기 자신이 판단의 기준이고, 자신이 보기에 옳은 대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 기준에 어긋나면 분노하고, 자기가 인정받지 못하면 화가 나는 것입니다.

가인의 분노

창4:5-6

가인의 기준에 의하면 이는 불합리하고 불의 한 것이었습니다.

교만을 죄의 뿌리

분노는 교만의 열매입니다.

자신이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가인은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내 예물을 받지 않으셨을까?'

163쪽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보여야 할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원죄로 이미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랬기에 가인은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화가 납니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입니다.

그 현실은 자신이 보기에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입니다.

책의 내용에 상당히 공감되는 내용인데요.

다음 문장에서 저하고는 주어가 좀 다르네요.

내가 제대로 대우받거나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책은 소개하고 있는데요.

제가 요즘 분노하는 이유는 뉴스를 보면서 거짓말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또한 그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상식이 있는 사람인지 정말 이해가 안 되는데요.

기독교인 중에서도 혹세무민하는 사람 날개에 올라타 그 사람을 지지한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전 이런 현실이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불의하거나 부조리한 현실을 볼 때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요나에게 니느웨는 악한 나라였습니다.

마땅히 멸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정의였습니다.

그런데 니느웨가 회개하고 돌아섭니다.

재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공의가 실현되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제게도 이런 일이 생기면 요나처럼 분노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은 요나는 일깨워줍니다.

책을 보면서 요나서는 니느웨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요나가 깨닫게 하기 위한 말씀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요.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공 의하심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네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온유함으로 틀리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

각 챕터가 끝이 나면 소그룹을 위한 질문이 있습니다.

소그룹에서 토의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는 것도 유익할 것 같네요.

책을 읽기 전에 일곱 가지 죄를 점검하는 자가 진단표를 먼저 체크해 보고

책을 읽는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일요일이란 단어 대신에 주일로 사용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일요일에 교회가니?라고 묻게 되면 비기독교인이고,

주일에 교회가니? 라고 물으면 기독교인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일요일과 주일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성격을 가름하는 단어가 된 것입니다.

전에 기독교인 중에 '주일은 쉽니다'라는 팻말을 가게 입구에 달고, 일요일에 쉬는 가게 사장님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팻말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식당에는 일요일에 쉽니다. 라는 팻말로 대치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종교적인 정체성을 가려야 편한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일예배에 대한 생각도 흐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 3년이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의 의식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주일예배 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기독교인들 중에도 이런 예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이 책 마음 다해 주일예배는 주간 묵상집으로 교회 예배를 위한 성도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저자인 Paul David Tripp은 목회자이면서, 작가로 국제 컨퍼런스 강사로 활동하는 분으로, 많은 책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합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 읽어 보게 되었는데요.

일단 책이 어렵지 않고 이야기 형태로 들려주기 때문에 신앙적인 이야기를 옆에서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피해야 하는데요.

매 주일 한 주간의 묵상을 통해 주일을 준비하는 습관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이해하기 쉬운 짧은 묵상,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크리스찬의 정체성을 생각하면서 52주 동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은 주일 예배에 대한 한 문장을 시작으로 묵상 글과 마지막에는 읽어야 할 성경 구절, 묵상 질문, 그룹 토론에 사용할 만한 주제를 제공합니다.

기독교 공동체 안에 다양한 소그룹들이 있는데요.

이런 그룹에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네요.

하나님은 의미를 찾는 존재로 우리를 설계하셨다.

44쪽

책은 묵상할 포인트를 많이 제공해 줍니다.

평신도 뿐만 아니라 건전한 신학 사상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제공해 줍니다.

 
 

세상은 섬김을 받는 것을 위대함의 기준으로 판단해왔다.

플라톤은 "누군가를 섬겨야 한다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당시 시대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다.

플라톤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가 섬김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종처럼 섬기는 것을 복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사람의 기준을 180도 바꿔놓았다.

미묘한 변화를 준 것이 아니라 완전히 판을 바꿔 놓으셨다.

교회를 다녔거나 교회에 대해 들어 본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삶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집사라는 단어의 그리스 어원을 보면, '밥상머리에서 시중을 든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집사는 돌봄을 받는 직분이 아니라 종이나 머슴처럼 일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직접 종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집사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셨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신약성경은 거룩한 백성을 '둘로이'와 '디아코노이'라고 부른다.

각각 '일꾼'과 '웨이터'에 해당하는 말이다.

집사, 또는 일꾼으로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새로운 언약, 복음, 동료 제자들을 섬기는 것이 거룩한 백성이 해야 할 몫이다.

예수님의 멍에를 멘 이들에게는 "이웃을 사랑하라"거나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명령이 따른다.

신약성경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랑은 '말뿐인', 또는 '혀로만'하는 사랑이며 우리가 섬기는 주님을 부인하는 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종교개혁가들은 불순종을 '믿음이 없고 구원받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표식으로 보았다.

16-17쪽

종교개혁은 '만인 제사장'을 표방했다.

크리스천은 저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모두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제사장으로서의 특권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사역의 책임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밥상머리에서 시중을 드는 웨이터가 되어야 한다.

 
 
 

디모데전서 3장은 장로와 집사의 자격을 설명한다.

장로에게는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집사에게는 그런 자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해야 한다고 했다.

집사들은 혀를 남달리 잘 다스려야 했다.

성경대로 집사의 일을 교회가 감당한다면?

  1. 크리스천들이 서로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연합하게 된다.
  2. 인간을 위해 예수님이 감당하신 집사 사역에 합당하게 반응하게 된다
  3. 중보기에서 위선을 걷어내게 된다.

하나님의 눈은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에게 향해 계신다.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어디까지 도울 것인가?

첫 번째, 단순한 구호 단계가 시작이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찾아 그 삶에 들어가야 한다.

한번 베풀고 말게 하니라 무엇이든 결핍을 지우는 데 필요한 자원을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

두 번째 경제적 육성단계다.

하나님은 단순히 구제하는 데만 관심을 두시지 않고 가난한 이들을 회복시켜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하는 데도 신경을 쓰신다.

나눠 주는 게 아니라 소유하게 돕는 게 빈곤의 고리를 끊는 방법이다.

세 번째, 사회 개혁이다.

 
 
 
 

책에서는 교회에서의 집사 사역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집사에서부터 시작해서 자비 사역을 교회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를 위한 교회의 규정, 운영안, 기획서 등 교회 행정적인 자료에서부터 집사 사역의 종류로 어떤 사역을 구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지 소개한다.

빈민 사역, 난민 재정착, 노인들의 필요 찾기, 노인 돌봄 사역, 요양원 사역, 어린이 사역, 자녀 양육 지원 사역, 미혼모 사역, 재소자 사역, 환자 방문 사역, 장애인 사역, 구제 사역

임직자로 세워지는 자들의 필독서로 유익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이렇게 교회들이 사역하길 소망해 본다.

세상은 늘 복잡합니다.

사건 사고가 끝이지 않고요.

매일 새로운 뉴스가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데요.

요즘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불안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이런 전쟁을 바라보면서 사람들 나름대로 불안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 제가 읽은 책은 두란노에서 출간한 커티스 창의 <안녕 불안>입니다.

책의 저자인 커티스 창은 우리나라 독자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인데요.

비영리단체와 정부 기관을 섬기는 컨설팅 회사 컨설팅 위딘 리치의 설립자이며 대표로 활동하시는 분이고요.

듀크 신학교 자문교수와 풀어 신학교 선임 연구원이기도 하고요.

뉴욕 타임즈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에 글을 기고하시면서 방송 등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 분이라고 해요.

책의 역자는 정성묵님이고요.

책은 불안이란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 불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불안한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전 추천사 중에서 댄 알렌더 교수님의 글이 가슴에 새겨지는데요.

"우리는 불안을 인정하지 않고

불안을 피하려고만 하는 탓에

분열과 분노가 가득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요즘 대한민국 국민들도

불안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 같아요.

특히 정치는 무척 불안, 불안해 보이네요.

 

커티스 창은 중국계 미국 이민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요.

어릴 때 다양한 불안 증상이 있었다고 해요.

이런 고기능성 불안으로 30대 후반에 공황발작 증상과 극심한 불안증을 겪게 되었는데요.

치유 과정을 통해 불안에 대한 성경적인 접근법을 탐구하고

실험하면서 이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불안이라는 고통, 그 뜻밖의 기회

그렇지만 챕터 타이틀처럼 그 불안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됩니다.

저자의 불안은 고기능성 불안이라고 불리는데요.

세상에서 성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불안이라고 해요.

무슨 일이든 잘 해내고, 몇 수 앞을 내다보고, 문제를 예상하고, 재빨리 대비책을 마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도 좋은 성정을 거두어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갔고

우등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런 불안이 나의 성공의 큰 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국 심리학회는 불안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긴장감, 걱정, 혈압 상승 같은 육체적 변화를 일으키는 감정"

이런 걱정을 떨치지 못해 특정 상황들을 회피하기도 합니다.

식은땀이 나거나 몸이 떨리거나 어지럽거나 심장박동이 갑작스럽게 빨라지는 것 같은 신체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불안을 그리스 로마시대 의사들은 정신병으로 분류했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사람들에게 불안을 이기는 법을 제안했습니다.

19세기 의사들은 불안을 "신경쇠약"이라는 질환으로 발병 원인을 산업화의 가속화로 보았으며

증상은 피로, 걱정, 짜증 등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27건에 불안에 대한 사례가 있는데요.

건강한 불안 : 8

악한 영을 둘러싼 영적 불안 : 7

지위에 대한 불안 : 6

몸의 안전에 대한 불안 : 4

공금에 대한 불안 : 2

마가복음의 메시지는

사람들은 불안을 통해 예수님께 다가간다는 건데요.

불안은 예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불안 영적 성장의 출발점이라는 건데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불안의 영적 본질입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 이하에 나오는

...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상실이 '미래'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즉 불안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불안은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현재에 집중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내일에서 미래에서 당장 떠나라 오늘로 현재로 돌아오라.."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라(58)는 것입니다.

가끔 책을 지은 작가들을 보면 책에서 봤던 사람과는 좀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 다른, 이질감 때문에 불편한 경험이 있죠.

우리나라 한자어로 언행일치라는 말이 있는데요.

자신이 말한 말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실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책에 대한 감정도 좋아지지 않게 됩니다.

 

전 개인적으로 토저는 그렇지 않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설교자로,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 중에 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습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건데요.

그래서 그를 이 시대의 선지자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해요.

후에 독학으로 궁부를 하고 시키고에 있는 사우스사이드얼라이언스교회에서 30년간 목사로 사역한 후에 마지막 사역은 토론토 애비뉴로드교회에서 마감하였다고 해요.

심장마비로 66세 사역을 마감했는데요.

 

그의 쓴 글을 보면 늘 한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오직 복음만

이런 메시지가 마음을 뜨겁게 해서 다양한 책들을 출간하게 되었는데요.

책을 보면 사실 메시지가 비슷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용한 이야기가 겹치기도 하고요.

한 챕터에서 한 내용의 글이 다른 책에서도 비슷하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분의 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죠.

이 책은 1957년 1월 ~ 3월까지 12주 연속으로 주일 저녁 설교를 정리한 부분이라고 하네요.

전 사실 토저 목사님이 최근까지 살아계셨다고 생각했는데요.

오늘 책을 보면서 저자 소개 부분을 보니 1897-1963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그런데 동시대를 살았던 분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니 참 놀랍기만 한데요.

대략 100전의 삶의 현장이 오늘 우리가 사는 현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책은 온전한 믿음을 열망하다.

온전한 믿음을 향해 나아가다

하나님을 가리는 구름을 뚫고 올라가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함에 이르다

토저는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승리의 기쁨 안에서 조화롭게 교제하며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복음을 한 번 받아들이고 끝나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며,

순전한 예배를 드리면서 점점 더 성장해 가야 하는 삶의 시작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4단계

평범함

특별함

비범함

온전함

1-3단계는 이 땅에서 시작되고 완성될 수 있다.

그러나 온전함은 이땅에서는 은혜로써 시작되기만 할 뿐, 천국의 기쁨 가운데서 끝없이 지속될 것이다.

 

미지근하고 어중간한 그리스도인

보통의 자질이나 능력을 지녔으며, 눈에 뛸 만한 어떤 탁월함도 갖추지 못했다.

어중간하다 mediocre

정상으로 가는 길에 있는 중턱을 의미하는 두 라틴어 단어 medi(중간)+ocre(산)에서 나왔다.

45-48쪽

토저 목사님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자신은 어중간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한다고 해요.

이런 평범함 단계에서 특별함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데요.

앞을 바라보고 뒤는 그냥 내버려 두라!

사람들은 순종하기 싫어서 말씀 듣기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로마서 주해에 열을 올린다.

잘못 주해했다며 트집을 잡는다.

말씀의 해석을 가지고 열띤 언쟁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분이 순종하려 들지 않는 진리를 놓고 여러분과 열띤 언쟁을 벌이지 않으실 것이다.

65-67

페늘롱은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끊임벗이 좇는 일에 이상하리만치 창의적이다.

세속적인 사람들이 거칠고 뻔뻔하게 하는 일들을,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그 일들을 더욱 교묘하게 행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자신의 이익을 좇는 능력이 출중하다.

나는 수천 명이 선교, 치유, 예언, 더 깊은 영적인 삶,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이용해서 오직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은밀히 도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그것들을 핑계로 삼아 진심을 잘 덮어 두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이 얼마나 추한지 결코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든 이율배반적이 될 수 있다.

채움받기를 간청하면서도 그 채움을 거부하고,

채움받기를 간청하면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채우시는 것을 방해한다.

120-121쪽

난 개인적으로 이런 모습이 인간의 본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세상을 좀 비극적으로 바라봤습니다.

소포클레스가 했던 말 '인간에 있어 최선은 이 세상에 태어자니 않는 것이다. 차선은 하루 빨리 죽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인간의 본 모습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토저 목사님도 이런 인간의 본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데요.

이런 인간의 교묘성을, 이것을 십자가 못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네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이고자 하는 이들을 오히려 가차없이 십자가에 못 박으실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삶이 뜻대로 안 될 때.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상태를 경험할 것 같다.

이런 상태에 빠져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히 크리스천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카일 아이들먼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솔직하게 기록한 글이 이 책의 첫 번째 매력이다.

 

이야기 1

그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쉽게 낙담하는 편이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크게 받거나 불안에 시달린 적도 많지 않다.

늘 진취적이고 열정적으로 살았다.

좋은 면을 바라보고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런 저자가 정말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은 이유는 '약한 사람처럼 보이기 싫어서다'

어쩌면 이 부분은 나하고도 닮은 부분이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내가 부족하고, 약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도움 받는 것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카일 아이들먼은 빌립보서 2장 14절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새번역인데 좀 어감이 부드럽지 않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개역개정판이 훨씬 더 깔끔하다.

그런데 새번역과 개역판의 어감이 조금 다르다.

개역판에서는 일을 할 때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는 말처럼 읽었는데, 새번역에서는 자기가 일을 할 때 불평하지 말고 시비걸지 말고 그냥 하라는 말로 읽혀진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투덜대지 말고 시비 걸지 말고 하라는 뜻이 된다.

누가? 내가..

 

이야기2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은 생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음으로 알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겪을 혼란과 난관, 불안을 아셨다.

이런 제자들에게 내린 처방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제자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해결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 비유의 핵심은 바로 연결이다.

예수님과 제자의 연결이 바로 핵심이다.

 
 

내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 드는 네 가지 감정

낙심 - 자신감과 열정의 상실

피로 - 오랜 기간의 집중된 작업에서 비롯하는 극도의 육체적, 정신적 지침

분노 - 뭔가를 바꾸거나 이루지 못해서 화나거나 짜증난 감정

불안 - 스스로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을 앞두거나 그런 결과를 마주했을 때 생기는 걱정이나 근심

인간에게 이런 감정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 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런 감정을 무시하고 넘어가다보면 삶의 엔진이 연기를 뿜으며 작동을 멈추게 된다.

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겸손한 항복을 시작하면 된다.

스스로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 분 앞에 얻드리는 것.

낙심, 피로, 분노, 불안을 끊는 방법

그 연결 방법을 설명하는 책.

김병삼 목사님의 신간 다시, 교회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처음 책을 보면 디자인을 살펴보게 됩니다.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중요한 포인트를 책 표지에 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유독 눈에 들어온 글자는 '래디컬'이란 글자와 '본질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레디컬이란 단어는 근본적인, 급진적인 이란 단어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상적으로 진보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레티컬이란 단어에 부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요.

책의 저자는 신앙에서 레디컬을 꿈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질을 잃어버린 시대라는 단어가 우리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네요.

교회는 삶의 문제에 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세상의 방식과는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상식을 깨트려야 합니다.

세상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고 다투고 시샘하고 힘자랑하면 누가 교회를 찾겠습니까?

교회의 방식은 복음에 근거해야 합니다.

교회가 매력을 잃었다는 것은 곧 복음의 본질을 잃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이 매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복음의 본질을 되찾을 때 우리는 매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책의 저자인 김병삼 목사님은 한국교회에서 존경받는 분으로 목회를 열심히 감당하고 있는 분입니다.

무엇보다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으로 만나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계신 분입니다.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 외벽에는 "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라는 슬로건이 걸려있는데요.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교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염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교회라는 제목을 갖고 책을 쓰게 되셨다고 해요.

다시 교회를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초대교회를 떠올립니다.

교회는 늘 교회의 위기와 혼란 앞에서 그 답을 초대교회에 물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본질적인 뜻과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원초적인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며 '다시 쓸모 있는 교회로', '다시 감격 있는 예배로', '다시 쓰임 받는 성도로', 다시 벽을 허무는 사랑으로'라는 네 가지 주제를 다루어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쓸모 있는 교회로'라는 말에서 현재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초대교회의 모습은

그들은 남의 돈을 갈취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필요를 따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기도하기에 힘썼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었습니다.

비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교회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기독교, 교회가 참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기도 합니다.

교회는 마치 정신이상자들의 소굴 같고 기괴하며 그리스도인들은 가식적이고 비열하기 짝이 없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매력은 박해로 죽어 가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페르페투아는 물소 뿔에 받혀 죽었습니다.

그녀는 귀족이었습니다.

아직 스무 살을 조금 넘긴 젊은 나이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투옥되었을 때 가족들이 찾아와 배교할 것을 강요했지만 그녀는 순교를 택했습니다.

그녀는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 나올 때 노예인 펠리치타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노예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펠리치타의 손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순교의 순간 작별의 입맞춤을 나눕니다.

페르페투아의 순교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

교회는 단순히 모이는 것에 목적을 두기 시작하면서 뭔가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왜 모입니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입니까, 아니면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모입니까?

 
 
 
 

A.D. 380년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예배당에서 황제와 귀족들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황제와 귀족들이 된 것입니다.

교회의 예배는 그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본질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기독교 고전 중에 고전이라고 불리는 천로역정 책을 읽고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알고 있는 천로역정인데요.

이 책은 1678년에 쓴 기독교 관련 소설입니다.

총 2부로 되어 있는데요.

1인칭 시점의 대화체로 이야기 형태로 진행이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1부에서는 크리스천이 전도사라는 사람을 만나 어려움을 견디며 천국으로 가는 길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2부는 크리스천의 아내인 크리스티나가 4명의 아이들과 자비심이라는 젊은 천녀와 함께 천국으로 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에 두란노 출판사에서 천로역정 2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출간했는데요.

기독교 메이저 출판사답게 좋은 책을 기획한 것 같네요.

 

천로역정은 이슈가 되는 이야기가 좀 있습니다.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유명하고요.

수련회에서 천로역정을 테마로 수련회 전체 일정을 잡는 경우도 있고요.

청소년들에게 공동체 훈련용으로 천로역정을 녹여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번에 출간한 천로역정2는 사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 기독교인 중에 2부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분들도 많지 않을 것 같네요.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읽어 두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첫 번째 이야기에서 한 가장의 가장인 크리스천은 수많은 사람의 오해와 만류, 숱한 유혹과 모진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믿음의 사람들의 도움으로 끝내 달라갈 길을 마쳤지요. 이에 소개해 드리는 2편에서는 그렇게 순례를 떠나던 크리스천을 조롱하고 무시했던 아내 크리스티아나와 아이들이 크리스천의 뒤를 이어 순례의 길을 떠나며 겪게 되는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책의 시작은 순례자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그가 살았던 곳은 사람들로 엄청나게 붐비는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도시였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은 못되고 게으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곳은 한 마디로 멸망의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에서 한 사람이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가 순례자죠.

당시에는 사람들이 바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지금은 그를 높이 평가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순례자의 길을 따라갈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탐욕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티나는 남편을 떠나보낸 후에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남편이 등에 무거운 짐을 내내 짊어진 채 자기 앞에서 했던 말과 행동이 번갯불 번쩍이듯 자꾸 떠올라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특히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을까 했던 남편의 괴로운 절규가 그녀의 귓가를 맴돌게 됩니다.

...

엄마와 아이들은 순례자의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책 뒤에는 존 번역의 생애와 시대적인 상황을 나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존 번역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데요.

죽는 날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존 번연 목사님의 인생이 순례자의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순례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성구가 마지막 장에 나옵니다.

 
 

믿고 볼 수 있는 책을 출간하는 두란노가 또 하나의 명작을 출판했네요.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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