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본문 창 30-31

 

야곱은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7년을 일하기로 합니다.

아주 열심히 일하는 야곱의 모습을 보고 라반도 만족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7년이 지나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다음 날 아침에 깜짝 놀랄 일이 발생했습니다.

신부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기 때문입니다.

삼촌이 야곱을 속인 겁니다.

 

그래서 다시 7년을 라헬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도합 14년을 일하면서 야곱의 삶은 행복했을까요.

레아와 라헬의 시기 질투 전쟁에서 야곱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레아를 통해 낳은 아들의 이름의 뜻을 보면

르우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시므온,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레위,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유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레아는 남편과의 불편한 관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젠 라헬의 공격입니다.

라헬이 자신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주고 아이를 낳습니다.

단,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납달리,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레아도 가많이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녀의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주고 아이를 낳게 합니다.

 

갓, 복되도다
아셀,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자매가 서로를 향해 말화살을 쏘며 공격이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다시 레아가 아이를 낳게 됩니다.

 

잇사갈,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스불론,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레아는 늘 남편의 사랑을 구했던 것 같습니다.

 

라헬로 요셉을 낳고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고 말하면서 자식을 향한 두 자매의 전쟁은 끝이 나는 것 같습니다.

 

라헬에게 요셉은 아주 귀한 아들이죠.

야곱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그 만큼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가정의 화합을 이뤄낸 아들이 요셉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가정에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업적인 부분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욕심많은 외삼촌이 야곱을 많이 속여서 14년을 일했지만 자신의 재산이 별로 없었읍니다.

그리고 사업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형성하게 됩니다.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

자신의 품삯으로 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라반의 것으로 정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양이나 염소가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게 태어나도록 온갖 수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야곱의 양과 염소가 라반의 것보다 더 많아지고

이 일로 라반과 사이가 좋지 않게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고향으로 돌아가라 명하게 됩니다.

 

창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자시의 소유를 갖고 라반에게 말하지 않고 그냥 떠나게 됩니다.

 

삼일 후 라반이 알게되고 야곱을 쫗아오게 되고 7일 되는 날 만나게 됩니다.

야곱과 라반의 이야기를 들으면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는 내용을 보면, 좀 불편해 집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야곱도 자신의 소유를 늘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정직하게 일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아무래도 좀 불편해 보이지만 결과론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통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라반도 인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일단란 지어지고 언약을 맺고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라반의 속임수와 야곱의 속임수 모두 옳지 않죠.

그럼에도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갖고 태어난 모든 사람은 남을 속이려합니다.

자신의 소유를 늘리려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의 것을 가져오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에도 이런 악한 모습이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하심속에서 점점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죠.

 

우리도 야곱과 마찬가지로 속이는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것이 옳지 않음을 자각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 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 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내밀길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 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옹졸한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 줄순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순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봐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있네
어찌할수 없는 이맘을 주님께 맡긴체로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여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 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 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이해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여 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추악한 나의 욕심이여
오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묵상본문 창25-29

 

창세기 25장은 아브라함의 죽음을 기록하고 이삭의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삭에게는 2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40에 결혼을 하고 아이가 없다가 하나님께 간구해서 얻은 아들로 60에 낳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둘의 이름은 에서와 야곱인데요.

 

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태속에서 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25:22절을 보면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영어 성경을 그면 그가 he가 아니라 she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리브가가 자신의 태속에서 싸우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께 물어봤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리브가에게 미리 쌍둥이가 태어날 것과 큰자가 어린자를 섬길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이후에 이삭과 리브가는 서로 다른 아들을 좋아했다고 기록합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해서 에서를 좋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리브가는 야곱에게 그 언약의 말씀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7장에 나오는 이삭의 축복을 꾀를 써서 야곱에게 돌리도록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에서에게 실망한 사실이 있습니다.

창세기 26:34절에서 에서가 40세에 헷 족속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는데

이 사건에 대해 이삭과 리브가는 근심했다고 말합니다.

영어 성경을 보니 고통의 근원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27:46절은 이 일로 리브가 삶이 역거워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며 라반에게 보내 아내를 맞으라고 말합니다.

 

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에서의 가나안 며누리를 이삭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이스마엘의 딸 중에서 마할랏을 아내로 다시 맞이합니다.

 

이스마엘은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같습니다.

장자의 명분까지 가볍게 여길 정도로 판단력이 약해 볼 수도 있지만

악해 보입니다.

 

잘못된 판단은 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네요.

 

이삭이 아내 리브가를 맞이한 곳은 브엘라해로이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죽은 후(175세)에 머문 곳도 브엘라해로이입니다.(창25:11)

이곳에서 이삭의 이야기는 시작이 됩니다.

첫 시작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복을 주신 곳이 브엘라해로이입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는데 다시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삭은 아마도 그랄로 내려가서 해안 도로를 따라 애굽으로 내려가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랄 땅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애급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 거주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어서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다"라고 말씀해 줍니다.

아브라함처럼 이삭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에 머물게 됩니다.

이삭은 그랄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해에 백배의 수확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26:12)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랄땅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랄왕 아비멜렉이 이 땅을 떠나라고 요구합니다.

이삭은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물을 팝니다.

 

이번에는 그랄 목자들이 시비를 걸어오네요.

그 우물이 자신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다른 우물을 팝니다.

여기서도 다툼이 있어 자리를 옮겨 다시 우물을 팝니다.

 

더이상 다툼이 없어 그 곳 이름을 르호봇이라 부릅니다.

 

뒤에 이삭이 브엘세바로 가게 됩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창 26: 24-25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여기에서도 이삭의 종들은 우물을 팝니다.

 

이후에 이삭과 아비멜렉의 계약이 나옵니다.

아비멜렉이 보니 여호와가 이삭과 함께 계심을 알고 평화 조약을 맺자고 합니다.

이삭은 그렇게 하는데요.

성경을 읽으면 이삭의 삶은 아브라함과 이삭, 요셉과 비교해 봤을 때 다이나믹한 삶을 살지 않고 조용하게 사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아마도 그의 성격이 온유해기 때문같은데요.

온유함 가운데 살았던 이삭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꼭 삶을 다이나믹하게 살아갈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기근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아내가 너무 예뻐서 누이라고 속여야만 자신의 생명이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바로는 사라를 자신의 궁으로 데려가고 아브라함에게는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는 줍니다.

이렇게 일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사라의 일로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립니다.

바로는 아브라함을 불러 왜 이렇게 했는지를 물어보게 됩니다.

저같으면 당장 아브라함을 죽이라고 명령했을 것 같은데 바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사라를 내보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사라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주며 일단락을 짖게 됩니다.

애굽에서의 일을 경험한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런데 창세기 20장에서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발생합니다.

그곳은 그랄땅으로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날 밤에 하니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납니다.

사라는 남편이 있고, 그 남편 아브라함은 선지자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사라를 돌려보내며 은 천개를 아브라함에게 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랄 땅 원하는 곳에 머물라고 합니다.

 

이렇게 2번의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한 아브라함은 이번 일로 무엇을 경험했을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세운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하신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아마도 그때는 몰랐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일들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들 이삭이 태어난 후 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세우신 언약이 어떻게 이뤄지는 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통해 알게되고 비로서 믿음의 조상의 면모를 보여주게 됩니다.

 

창세기 21장에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창세기 22장에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고 그 시험에 아브라함은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으로 마무리 되는데요.

 

하나님의 복은 창22:17-1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의 삶은 고된 삶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가슴속에 칼로 새긴 것은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삭을 달라 하셨을 때 바로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뒤에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언약 뒤에 계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삶을 살아봅시다.

 

 

 

 

창세기 19장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아브람의 종과 롯의 종이 다퉈서 분쟁하지 않으려고 서로 떨어져 살기로 하면서 롯이 선택한 땅입니다.

롯이 그 땅을 선택한 이유는 '창 13:10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동산과 애굽은 풍요로운 땅을 가리키는데 아주 비옥한 땅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 롯이 살게 되었는데 이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소돔에 대해 '창 13: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라고 추가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죄악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라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소돔의 멸망 원인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멸망하러 가는 길에 아브라함을 만나는 이야기

아브라함은 여호와께 소돔성에 의인 50이 있어도 멸말하시겠습니까? 라는 물음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비는 모습이 나옵니다. 계속해서 숫자를 바꿔가면서, 45, 40, 30, 20, 10 이렇게 숫자를 바꿔가면서 길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소돔성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롯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롯이 그들을 대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이들은 소돔의 멸망이 나그네를 잘 대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이는 상관이란 단어를 통해 we can have sex with them

성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 복합적이라 생각합니다.

드러난 문제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제들이 소돔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 창19:29절에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아브라함을 생각하가 롯을 구해주셨다는 말이 나옵니다.

 

he remembered Abraham

하나님이 기억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해 롯을 구해주셨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이 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God remembered Abraham

 

오늘 나는 아브라함인지 아니면 롯인지 

둘다 은혜이지만

더 큰 은혜는 아브라함이 아닐까요?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봅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아브람이 등장합니다.

창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은 순종합니다.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의지한 아브람은 세겜 땅에 도착합니다.

이때 여호와가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이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아브람은 제단을 쌓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후의 성경을 보면 아브람은 몇 차례 제단을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제단을 쌓은 후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 부분의 성경적인 해석은 '하나님을 예배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자신이 살던 곳을 정리하고 먼 곳으로 이사해서 살아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시골의 경우 텃세를 부리는 사람도 있어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도 많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를 한다면 새롭게 직장을 얻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불안한 상태로 한 순간에 바뀌게 됩니다.

 

지금부터 약 4천 년 전에는 더더욱 심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안전이 담보된 사회라 죽음의 위협을 느끼진 않지만 아브람 당시에는 죽음의 위협 속에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브람의 불안한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데요.

 

이런 상황에도 아브람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전투적인 삶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을 나타내 줍니다.

 

초반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지지만 점점 믿음의 사람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데요.

 

오늘을 사는 우리도 연약한 아브람의 모습이 삶속에 나타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끊임없이 제단을 쌓는다면 어느 순간 아브라함의 모습으로 믿음의 모습을 갖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사람에게 경제적인 문제 뿐만아니라 건강, 가족, 직장 등 다양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예배한 아브람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복된 삶임을 고백해 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루의 삶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창 12:7-8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세기 4장에는 가인의 족보가 나옵니다.

가인 - 에녹 - 이랏 - 므후야엘 - 므드사엘 - 라멕을 낳았더라

 

성경에서는 라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5장에는 아담의 계보를 소개해 줍니다.
아담 - 셋 - 에노스 - 게난 - 마할랄렐 - 야렛 - 에녹 - 므두셀라- 라멕 - 노아

순으로 소개가 되는데 일정한 패턴을 따라 소개되는데  자세하게 소개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에녹과 노아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가인의 후손 라멕에 대한 설명은 라멕의 두 아내를 소개했고, 그의 아들들과 딸까지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라멕에게는 자랑 거리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아내 아다와 씰라는 당시 대단한 집안의 여성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요즘 말로 성공한 커리어 우먼과 같은 사람이었을 지도 모르니다.

성경에 여자의 이름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이름이 기록될 정도이니 뭔가 특별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아내를 통해 대단한 장인들이 태어났습니다.

가축치는 자의 조상,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 구리와 쇠로 여러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

창세기 기자는 이렇게 가인의 자손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한 줄로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기자가 에녹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가족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짧은 글이지만 이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시나요?

 

5장 족보가 끝이 나고 6장에는 인간의 죄악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6장 2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에 자식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무질서 시대에 노아가 등장합니다.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아담의 계보를 보면 대략 100세 즈음에 아들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노아만 500세에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노아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노아를 의인, 당대에 완전한 자,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삶이 성공한 것처럼 보는 사회,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창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4장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와는 아들을 낳고 She said, "With the help of the LORD I have brought forth a man."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득남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여자의 후손을 낳았다는 기쁨의 표현 같은데요.

 

조금 지나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게 됩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고, 동생 아벨의 제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까요?

가인의 제물은 땅의 소산이었고, 아벨의 제물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가인의 마음에는 사악함이 있었기 때문에 받지 않으신 겁니다.

 

그 이후에 가인은 몹시 분했다고 합니다. 안색까지 변했다고 하는데요.

Cain was very angry, and his face was downcast.

 

이때 하나님이 가인에게  Why are you angry? Why is your face downcast? 고 물으시는데요.

여기서 가인의 대답은 뭘까요?

대답이 없습니다.

 

결국 가인은 아벨을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창 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 동쪽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에녹이란 성을 쌓고 그곳에서 자식을 낳고 살았습니다.

라멕대에는 야발, 유발, 두발가인을 낳았는데요.

야발은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성공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그들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창 4:23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혀서 젊은 아이를 죽였다고 아내에게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 반면에 아벨 대신 셋을 주셔서 대를 이은 셋의 후손들의 삶을 보면

창 4:25절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소박해 보이지만 이들은 하나님을 예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화려함 속에 살아가는 것보다 복된 삶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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