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헨리 나우웬.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헨리 나우웬

그분을 추억하는 많은 이들에게 선물 같은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바로 헨리 나우웬의 안식의 여정입니다.

 

헨리 나우웬(1932-1996)

1932년 네덜란드 네이께르크에서 태어나,

1957년에 예수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습니다.

196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메닝거연구소에서 공부했고,

노트르담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심리학을 가르쳤습니다.

신학을 공부한 뒤에는 예일신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존경받는 교수이라 학자로 살았던 삶에서 큰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1981년 그는 ‘하나님 사랑’에 빚진 자로서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페루의 빈민가로 들어가 그곳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이후 다시 대학 강단으로 돌아와 3년간 하버드신학대학원에서 강의를 맡았으나

그는 더 이상 이 같은 삶에서 영혼의 안식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6년, 발달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 안식년을 맞아 자신의 삶을 기록하게 되는데 그때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의 Text입니다.

그 후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 복귀한 후에 1996년 9월에 업무차 네덜란드에서 갔다가 심장마비로 소천하게 됩니다.

그의 책은 《공동체》, 《예수의 길》, 《마음의 길》, 《삶의 영성》, 《귀향의 영성》, 《돌봄의 영성》,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영적 발돋움》, 《영성 수업》, 《상처 입은 치유자》,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춤추시는 하나님》, 《영혼의 양식》, 《예수님의 이름으로》(이상 두란노) 등의 수작이 지금도 전 세계 독자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책 표지에는

어둠 짙은 세상에서

예수의 빛을 누린

복된 순례자의 고백

헨리 나우웬을 가장 잘 설명하는 수식어구 같네요.

책의 서두에도 소개하고 있지만 헨리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만나서 축복하고, 위로하고, 조언하고 이렇게 관계를 쌓은 사람이 무려 1,000명이 넘는다고 해요.

그리고 그렇게 우정을 나눈 사람 중에서 이름을 언급한 사람이 60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그의 일기에 언급한 사람들도 헨리와의 만남이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작은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을 통해 그를 마주한 사람은 깊고도 아름다운 좋은 만남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사제의 길과 글쓰기를 그의 소명이라고 말할 정도로 글을 많이 썼는데요.

하버드신학대학원을 떠나 라드쉬에 오게 된 경위를 담은 <데이브레이크로 가는 길>이 그 기간에 기록한 일기라고 하네요.

그리고 9년이 흐른 후에 다시 일기를 기록으로 남기게 됩니다.

기도는 무의식의 삶과 의식의 삶을 이어 주는 다리다.

기도는 내 생각과 마음을, 의지와 열정을, 머리와 가슴을 이어 준다.

기도야말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내 존재 구석구석에 스며드시게 하는 길이다.

기도는 내 온전한 일관성과 내면의 평안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다.

22-23쪽

헨리 나우웬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글을 솔직하게 씁니다.

우리나라에 체면이란 글자가 있습니다.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솔직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헨리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므로 독자는 그의 글을 보면서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또한 학자답게 깊이 있는 묵상을 통해 지성인들의 지적인 필요를 채워주기도 합니다.

처음 헨리 나우웬의 책을 읽을 때 '너무 말을 어렵게 한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자의 어려운 말을 역자가 조금은 풀어서 설명해야 하는데, 역자가 어려운 말을 더 어렵게 하지는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이번 책에서 역자는 좀 더 쉽게 풀어 출판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런 노력이 헨리 나우웬을 더욱더 잘 알 수 있게 도와준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란노라는 출판사의 역량도 높여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일상과 영성을 잇고 싶어 하는 크리스천 독자에게 아주 유용한 책입니다.

너무 많이 읽으려고 하지 않고 하루하루 독자와 이야기를 나눠가면서 읽으간다면 아주 많은 유익을 얻게 될 책이라 생각합니다.

책 뒤에 현실을 사는 가슴과 머리의 대화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헨리 나우웬을 가장 잘 표현한 글자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좋아요.

두란노 신간 <물러서지 마> 책인데요.

무엇보다 제목에서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제목을 설명하는 문장까지 합치면 '예수를 온전히 따르기 위하여 물러서지 마'입니다.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은 <래디컬>이라는 책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분인데요.

그때 읽을 때는 좀 진보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에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네요.

 
 

저자인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이 고민하는 것을 한 문장으로 잘 설명해 주는데요.

"성공 신화가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나의 안위를 위한 거짓 복음이 문제였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이 거짓 복음으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음은 무엇이고, 거짓 복음이 무엇인지 이 책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이런 거짓 복음의 폐해가 엄청 많이 느껴집니다.

특히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심각성이 대단하더라고요.

복음 위에 정치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갈라졌는지 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여기에 한국 교회 목사들이 일조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좌든, 우든 정치를 교회로 끌어들인 목사들

이들 또한 자신의 안위를 위해 거짓 복음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아메리칸 복음이란 무엇일까? 너무도 오랫동안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예수님을 높이는 성경적인 복음을 버리고 그 자리를 안위와 권력과 정치와 번영을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는 아메리칸 복음과 맞바꿔 왔다. 아메리칸 복음은 아메리칸드림에 기독교의 색깔만 입힌 거짓 복음이었다. 증거는 도처에 깔려 있다.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중심으로 연합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개인적인 신념과 정치적인 신념이라는 우상 앞에서 너무도 쉽게 분열된다.

18쪽

 
 

오늘날 우리가 교회 안에서 경험하고 있는 깊은 낙심과 환멸과 상처와 의심과 분열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거짓 복음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하지만 진정한 복음으로 돌아가기 위한 겸손과 용기가 있다면 예수님을 따라 다른 미래로 갈 수 있다.

그 미래는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싸우는 미래이며 우리는 그런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진정한 복음은 적대감의 벽을 세상과 다른 차원의 연합으로 바꿔 놓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서로를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로 여기는 미래로 갈 수 있다.

요한복음 12장 25절에서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예수님은 왜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셨을까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망가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고 꿈이 아닌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복음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부름입니다.

성경적인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여섯 단계

  1.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 공동체를 이루라
  2. 아침과 저녁에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을 찾으라
  3.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라
  4. 세상 문화를 거스르는 하나님의 연민을 보여 주라
  5. 정의를 행하라
  6.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물러서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온전히 따르는 것에서, 물러서지 말라

예수 안에서 하나 되는 것에서, 물러서지 말라

예수로 용납하는 것에서, 물러서지 말라

예수의 말씀을 먹는 것에서, 물러서지 말라

예수의 정의를 위한 것에서, 물러서지 말라

예수 복음 전파를 위한 것에서, 물러서지 말라

예수의 복음을 살아 내는 것에서, 물러서지 말라

진정한 복음과 복된 인생의 지표를 제시해 주는 책입니다.

어릴 적 수업을 할 때 늘 영어는 부담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말과 어순이 달라 머리로 한참을 생각해야 단어를 조합할 수 있었죠.

그러다 보니 우리 시대에 영어를 공부했던 선생님조차 외국인과 대화가 어려웠는데요.

요즘에는 초등학교 학생들도 원어민 수업을 들어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네요.

오늘은 영어공부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정철의 A.D. 영어학습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자이신 정철 선생님은 우연히 영어 공부에 깊이 빠져 몇 년간의 좌충우돌 끝에 영어의 원리를 터득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교육심리학, 영어교수법을 공부한 뒤에 한국형 영어교수법을 개발하셨다고 합니다.

1971년 22세의 나이로 영어 선생님이 되시고 지금까지 쭉 이 길을 걸어오신 분이시라고 하니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이 책은 선생님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영어학습법을 소개하는데요.

A.D.는 라틴어 Anno Domini 아노 도미니 '주의 해(年)에')라는 뜻으로 주님을 만난 후에 만든 영어학습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아이들이 쉽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모국어로 배울 때는 저렇게 쉽게 배우는데 외국어로 배울 때는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국어를 배우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촘스키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언어 습득 장치를 가지고 태어나며 이 LAD를 통해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의 언어를 흡수해서 자동적으로 습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LAD는 태어나서부터 2세경까지 가장 활발하게 작동하며 그 이후에는 LAD가 서서히 소멸된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은 암호 해독과 같아서 뇌에서 상당히 고급 기능이 동원된다고 해요.

뇌가 성숙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글자를 읽고 쓰면서 학습하도록 하면 굉장히 부담이 된다고 하네요.

그림을 보면서 원어민 소리를 따라 발음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영어 학습의 미신 중 가장 큰 미신은 "문법만 마스터하면 영어를 잘하게 될 것이라"이고

두 번째 큰 미신은 "단어를 많이 알면 영어를 잘하게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영어 문장을 구성하는 청크는 6가지 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런 학습법을 통해 영어공부 해보시기 원하시는 분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책입니다.

50세에 신앙을 갖게 된 정철 선생님의 A.D. 영어학습법

영어를 제2의 모국어로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존 비비어 목사님의 신작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책의 특징은 경외을 주제로 42일간의 묵상 집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매일 하루 1장씩 묵상하면 6주의 시간이 필요하고요.

아침, 저녁에 묵상한다면 3주에 걸쳐서 읽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사실 존 비비어 목사님의 책을 처음 읽게 된 계기는 순종과 존중이란 책 때문입니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책입니다.

그리고 존 비비어 목사님의 글이 좋아서 대부분의 번역된 목사님의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존 비비어 목사님의 책은 무조건 읽어야 하는 책처럼 생각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란노에서 출간된 존 비비어 목사님의 책은 어느덧 저의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소제목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훈련'인데요.

경외가 훈련이라는 뜻이 되네요.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처음에 소개됩니다.

경외도 습관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고민하게 합니다.

책은 습관이 되기 위한 5가지 도구를 제공해 줍니다.

P1. Passage 성경 구절(암송)

P2. Point 요점(핵심 개념, 본문 이해)

P3. Pender 숙고(묵상, 주의)

P4. Prayer 기도

P5. Profession 선언(선포)

존 비비어 목사님은 서문을 꼭 읽어 보라고 하시는데요.

우리는 무엇을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가?

거룩한 두려움?

  1. 우리는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한다.
  2.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은 많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아름다우며 친밀한 것이다.
  3.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파괴적인 두려움을 집어삼킨다.
  4.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선한 것의 출발점이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고 경이로우며 심지어 즐겁기까지 하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다.

 

5P 훈련

5P Tracker 사용법

꾸준히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독서 기록장입니다.

매일매일의 습관이 모여 경외 습관으로 거듭나도록 사용해 보시면 좋겠네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지극히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만 주시는

그분의 보배요. 엄선된 보석이다.

존 번연

 

책은 주제에 따른 묵상할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과 5P 훈련으로 구성이 됩니다.

5P 훈련 쪽에서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정리해 줍니다.

읽을거리를 통한 묵상과 하루 삶의 습관 훈련이 잘 구성된 책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주옥같은 말을 격언이라고 표현합니다.

네이버 사전에서 격언을

' 오랜 역사적 생활 체험을 통하여 이루어진 인생에 대한 교훈이나 경계 따위를 간결하게 표현한 짧은 글.'로 소개합니다.

 

성경에는 잠언이 있는데요.

이 잠언의 영어 표기는 proverb입니다.

즉 잠언은 인생에 교훈을 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궁금하시다면 잠언을 읽어 보시면 되는데요.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은 바로 솔로몬의 지혜를 담은 책으로 영어 원어를 직독직해로 해석해 가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책 뒤에 크게 나와 있는 부분은 바로 영어성경 원어민의 발음을 들을 수 있는 곳의 주소입니다.

필요하시면 다운로드하셔서 공부하시면 도움 되겠죠.

먼저 잠언의 나와있는 내용을 키워드 별로 구분했습니다.

의인과 악인, 지혜, 지켜야 할 것, 삶의 태도, 사람 관계, 사업

이렇게 6개를 큰 주제로 나눠 잠언 구절을 뽑아 책을 편집했습니다.

영어성경 직독직해 해석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입니다.

  1. 끊어 읽기
  2. 문장 구조에 따른 해석
  3. 조동사
  4. 동사+ing
  5. 동사+ed
  6. to+동사
  7. 관계대명사, 관계부사
  8. 등위접속사
  9. 콤마의 사용
  10. 도치

문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짧은 설명으로 전체적인 문법적인 애용을 다루는데요.

읽어보니 참 유익하더라고요.

다음으로 영어성경 잠언에 나오는 어휘인데요.

많이 나오는 단어에는 볼드체를 사용해서 빈도수에 따라 구분 지어 놓았습니다.

 

의인에 대한 성경 구절을 영어로 표기하는데요.

바로 오른쪽에는 이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법의 난이도를 옆에 표기해 둬서 잠언과 영어 공부를 함께 할 수 있게 하는데요.

 

성경에 나오는 잠언의 문장을 영어로 읽으면서 영어 공부도 겸할 수 있어서 영어성경 공부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것 같아요.

하루 한 절씩 가볍게 읽으면서 영어로 문장을 풀어 보는 것도 영어성경 읽는 재미 중에 하나인 것 같네요.

The righteous man walks/ in his integrity;

His children are /blessed /after him

이렇게 문장을 끊어 주고 해석하니 쉽게 해석할 수 있네요.

두란노에서 손성찬 목사님의 에세이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참 매력적이란 생각을 했는데요.

저자 소개 글을 보면서 존경받기 충분한 목회자란 생각을 했습니다.

 

소개글에 나오는 것처럼

목회자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죄책감을 늘 품어야 합니다.

솔직한 모습을 통해 위로를 받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죠.

 

두란노에서 보내준 책인데요.

일반적으로 책앞에 예쁜 포장지로 책을 감싸주니 받을 때 선물받는 느낌이 나네요.

이렇게 배송해준 분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도 참 예쁘네요.

책 차례인데요.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성경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프롤로그부터 눈을 확 끌어 당기는데요.

"과연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이 주제에 대해 성경은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데요.

좀 더 다른 질문으로

"내가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CS 루이스는 "만약 당신이 사랑으로 키우고 충분히 교감했던 반려동물이라면 분명 그때에도 얼굴을 마주한 채 함께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경은 훗날 가게 될 그곳의 이야기보다는 현재 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는다.

세상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는다.

데이비드 베너 <사랑에 항복하다>

어머니의 울음 속에는 '세상 모두가 비난해도 너는 내 자식이다.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라는 무언의 말이 담겨 있었다.

구약의 613개의 율법들이 있습니다.

하라와 하지말라로 나뉘어 있는데요.

이것을 예수님은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죄 지은 악인을 위해 착한 네가 좀 더 희생하라는 폭력적 의미 역시 더더욱 아닐 게다.

증오가 스스로를 해하기에 그래서 자기 자신마저 사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기에 그것을 막아 주십사 요청하라는 말씀이 분명하다.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를 살게 하시기 위해서..

사랑과 정의는 서로가 함께 존재하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것이다.

사랑을 토대로 한 정의만이 참된 정의이고, 정의가 구현될 때만 사랑의 진정성이 보장된다.

가장 기억에 남은 문장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한 걱정이 아닌 사랑으로 살아간다.

이 책은 기독교의 이슈를 질문하고 명확하게 답해 주는 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비 기독교인에게 기독교의 핵심을 잘 설명해 주는 책인데요.

비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유익을 주는 이유는 기독교 신앙의 교리를 쉽게 풀어 내는 능력이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표지에 바울이 1세기에 유대 문화에 대해 모르는 로마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로마서를 썼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로마서를 쓴다면 어떻게 썼을까 고민하는 심정으로 저자는 책을 썼다고 합니다.

 
  1. 0기독교란 무엇인가?

기독교에서는 복음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복음은 '복된 소리'입니다.

원래는 종교적인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황제가 전쟁에 나가 싸울 때 전쟁에서 승리하면 소식을 전하는 전령을 본국으로 보내 승리의 소식을 전합니다.

이것이 복음이었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소!

황제께서 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셨소!

이제 더는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소!"

그런데 초대 교인들이 이 복음이란 단어를 차용해서 사용했습니다.

"우리 왕께서 우리를 위해 승리를 거두셨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승리에 동참하고 그분의 평강 가운데 쉬도록 초대를 받았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기독교란 무엇인가?

복음이 선포되면 기독교입니다.

요즘 이단/사이비 교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들도 기독교란 단어를 사용하는데요.

그들에겐 복음이 없습니다.

그들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냥 사이비 종교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란 단어에 특허권이 없어 사이비 종교에 있는 사람들도 기독교란 단어를 차용해서 쓰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계신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3. 하나님이 진짜 계신다면, 왜 그분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가?

4. 종교가 답일까?

5. 왜 기독교 신자들은 ‘구원받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가?

6. 내가 천국에 가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7. 종교는 기본적으로 다 똑같다?

8. 예수 믿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힘들어 보일까?

9. ‘영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10.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인터미션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인터미션 2. 하지만 사실일까?

인터미션 3. 성(性)을 바라보는 기독교의 시각은?

기억에 남는 문장

죄는 행동이라기보다는 태도다.

죄는 하나님을 중심에서 내보내고 우리 스스로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부정과 왜곡과 불순종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권위에 저항하는 마음에 맺히는 나쁜 열매들이다.

순종하고 있는가, 아니면 순종이 다른 뭔가를 얻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고 생각해 순종하고 있는가?

내 마음은 우상숭배적이다.
내 의지는 반항적이다.
내 갈망은 부패해 있다.
내 종교는 이기적이다.
내 동기는 왜곡되어 있다.
심지어 진정으로 좋은 일을 할 때도 내 안은 교만과 경쟁심이 가득하다.
내 갈망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하지만, 
내가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일 때조차 그분의 영광은 언제나 뒷전이다.
복음특강 99쪽

 

총평하기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있는 기독교 초신자에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일단 기독교 전체적인 신학에 기본 골격을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에 모호한 부분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쉽게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저자인 그리머는 조직신학을 전공했다고 하는데요.
좀 딱딱할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어려운 신학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는 달란트를 갖고 계시네요.
알고 있지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예를 들어가면서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어 목사님에 대한 호감도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것에 대해 비판할 수 있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기독교인 철학자입니다.

대부분의 개혁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목회자들 이라면 존경하는 분입니다.

이 분의 삶이 존경받을 만하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100세가 넘은 분이 무엇이 아쉬워 이런 글을 쓰셨을까요?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네요.

 

대한민국이 출범한 지 75년의 세월이 지났다. 건국 초창기에 전쟁을 치르면서도 괄목할 만한 국가적 성장을 이룩했다. 모든 신생국, 후진국, 공산국가들이 겪는 정부 독재 기간과 군사정권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다. 김영삼 문민정부부터는 명실공히 법치국가와 민주정치 정도(正度)를 개척해 왔다.

그러나 민족의 운명적인 과제는 주어져 있었다. 남북문제의 해결이다. 현재로서는 평화로운 통일은 당분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6·25전쟁 이후부터 북한 정권이 추진해 온 정책에는 변화가 없고 지금은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공공연히 선언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의 핵무장 앞에 굴복하고 따라오라, 아니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보장할 수 없다’는 협박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기대와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경제적 원조는 핵무기 확장을 도왔을 뿐이다. 국제 정세로 미루어 평화로운 통일은 더 언급하거나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힘은 더 강한 힘으로 대응하면서 북한 내 변화와 국제적 발전에 따르는 기간이 필요해졌다. 그렇다고 기대와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자유도 그렇다. 우리의 높은 자유가 북으로 유입되고 경제적인 부가 빈곤으로 고통받는 북한 동포들에게 평화로이 제공되는 때는 반드시 찾아온다.

그때까지 우리는 북한 동포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무력이나 정권이 아닌 민족 사랑과 인도적 의무를 통해 증진시켜 가야 한다. 정치보다 선행하는 것은 인간 교류의 길이며 문화 교류가 뒤따라야 한다. 그 뒤를 계승하는 것이 경제 교류이고 정치가 뒷받침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없는 정권과 무력에 의한 통일은 불가능하다. 지금 남북 모두가 갖고 있는 거리감과 적대의식은 불행과 파국을 촉진시킬 뿐이다.

대한민국은 어떠했는가. 김대중 정부의 대북 원조는 역효과를 만들었고, 노무현 정부 기간에는 친북 반정부 운동을 앞세우는 대학 중심의 운동권이 정치세력화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가 그 운동권 출신의 정치이념과 경제 방향을 같이하면서 중도좌파의 노선을 택한 것이 현재의 결과를 만들었다. 문재인 정권은 출발할 때부터 상반되는 이중성을 안고 태어났다. 밖으로는 인권과 민주정치를 지향하면서 국내 정치의 방향과 경제정책은 좌파 이념을 도입했다. 그 이중성은 김정은 정권을 위해서 북한 동포를 위한 인권을 멀리했고 국제적으로는 휴머니즘과 상반되는 방향을 택했다. 자유세계와 유엔의 기대와 신뢰까지 약화시켰다. 국격은 추락하고 민생은 퇴락하는 결과가 되었다. 잘못된 친북 정책이 예상 못 했던 국가적 손실을 남겼다. 그 결과는 문 정권에서 버림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를 탄생시키는 아이러니 현상을 창출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하는 국민들이 크게 실망한 것은 문재인 정부보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허탈감이다. 지도자들의 가장 큰 불행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보다 사실을 은폐하고 더 큰 과오를 범하는 데 있다. 지난 일 년 동안 우리는 국민의당과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민주당의 자세와 태도를 보면서 놀라울 정도의 회의를 느꼈다. 신생 정부는 물론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자세였다. 수준 이하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태들을 감행했다. 정부 탄생 초창기부터 계속되는 탄핵 정치를 들고나왔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사건을 문제 삼고 떠드는가 하면, 없는 사실을 꾸며 가면서 국민을 선동하는 모습들이다. 마치 윤석열 정부가 무너지거나 가능하다면 추방하고 다시 집권해야 한다는 마음보 같았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자세와 책임은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당의 지도자와 책임 있는 정책 당사자들까지 애국심을 포기한 정권욕의 대변인 같은 처신을 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민주당과 국가를 위해 존경심을 갖고 대하고 싶었던 국민을 실망시켰다. 생각 있는 국민들은 민주당이 역할과 자존심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그렇게 배신할 수 있는가. 최근에는 4·19 이전에도 허용되지 않던 당 대표 선출에 금품을 뿌렸다는 사실까지 보도되고 있다. 민주당을 통해 나라를 섬기겠다는 정치인들의 사명을 언제 어디서 포기했는지 모르겠다. 지도자의 인격을 위해서라도 삼가야 할 욕설들까지 계속한다.

민주당이 싫어서도 아니고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야당의 지도자다운 자세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같이하고 싶은 것이 국민의 심정이다. 자숙하는, 반성하는, 존경받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국민을 배반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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