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에서 손성찬 목사님의 에세이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참 매력적이란 생각을 했는데요.

저자 소개 글을 보면서 존경받기 충분한 목회자란 생각을 했습니다.

 

소개글에 나오는 것처럼

목회자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죄책감을 늘 품어야 합니다.

솔직한 모습을 통해 위로를 받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죠.

 

두란노에서 보내준 책인데요.

일반적으로 책앞에 예쁜 포장지로 책을 감싸주니 받을 때 선물받는 느낌이 나네요.

이렇게 배송해준 분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도 참 예쁘네요.

책 차례인데요.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성경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프롤로그부터 눈을 확 끌어 당기는데요.

"과연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이 주제에 대해 성경은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데요.

좀 더 다른 질문으로

"내가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CS 루이스는 "만약 당신이 사랑으로 키우고 충분히 교감했던 반려동물이라면 분명 그때에도 얼굴을 마주한 채 함께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경은 훗날 가게 될 그곳의 이야기보다는 현재 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는다.

세상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는다.

데이비드 베너 <사랑에 항복하다>

어머니의 울음 속에는 '세상 모두가 비난해도 너는 내 자식이다.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라는 무언의 말이 담겨 있었다.

구약의 613개의 율법들이 있습니다.

하라와 하지말라로 나뉘어 있는데요.

이것을 예수님은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죄 지은 악인을 위해 착한 네가 좀 더 희생하라는 폭력적 의미 역시 더더욱 아닐 게다.

증오가 스스로를 해하기에 그래서 자기 자신마저 사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기에 그것을 막아 주십사 요청하라는 말씀이 분명하다.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를 살게 하시기 위해서..

사랑과 정의는 서로가 함께 존재하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것이다.

사랑을 토대로 한 정의만이 참된 정의이고, 정의가 구현될 때만 사랑의 진정성이 보장된다.

가장 기억에 남은 문장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한 걱정이 아닌 사랑으로 살아간다.

+ Recent posts